[음악자료실] 아! 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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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차르트...
음악이야기가 개강한 지 이제 대전은 1년, 일산과 서울은 한 달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매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 모차르트의 음악을 감상해왔습니다.
이러한 모차르트에의 여정은 아마도 유음이 게속되는 한 영원히 이어질 것 같습니다.
그만큼 모차르트는 서양음악사 전체를 통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지휘자 푸르트벵글러가 교향곡 39번 1악장을 두고 '질주하는 슬픔'이라고 말한 뒤에
모차르트의 모든 음악은 그대로 거장의 말이 로고스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교향곡 25번을 들으며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건 말러나 브루크너 등 후기 낭만쪽의 교향곡을 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소리보다는 음악 그 자체에 더욱 빠져드는 모차르트...
그건 제대로 된 연주이어야 하고 이왕이면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지휘 음반이면 더욱 좋습니다.
한 지면에 기고했던 모차르트에 대한 글을 올려드립니다.
조금이나마 모차르트를 이해하는 첩경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클라라하우스나 마리아칼라스홀에 오셔서
모차르트답게 연주한 명반을 꼭 감상해보시기를...
감사합니다.
8월 4일 클라라하우스에서 유혁준 드림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과 영화 <쇼생크 탈출>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2주 동안 독방에서 지낼만한 가치가 있었나?
앤디: 내겐 식은 죽 먹기였어.
그게 말이나 되나? 일주일이 1년 같았을텐데...
앤디: 모차르트가 내 친구가 되어 줬지.
교도소 측에서 레코드 플레이어를 갖다주기라도 했단 말인가?
앤디: 모차르트는 나의 머리에도, 그리고 가슴에도 있었어. 그게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이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거든. 너희들은 음악에 대해 그렇게 느껴보지 않았어?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억울하게 종신형을 선고 받고 수감 중인 은행원 출신 앤디가 교도소장의 부정한 돈을 세탁해 준 덕분에 신임을 받는다. 어느 날 앤디는 간수의 방에서 LP레코드를 틀고 교도소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흘려보낸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하늘을 바라보며 음악에 빠져드는 죄수들. 결국 앤디는 2주 동안 독방에 갇히는 벌을 받는다. 그리고 동료들과 첫 식사 자리에서 앤디는 음악은 오디오나 공연장에서 느끼는 것이 아닌, 머리와 가슴 속에 있다고 말한다.
1994년 팀 로빈스와 모건 프리먼이 주역을 맡았던 영화 <쇼생크 탈출>. 이 영화 중반부에 느닷없이 등장한 음악은 당시 필자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관객 모두가 앤디와 같은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그 노래는 바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3막에 나오는 백작부인과 하녀 수산나의 2중창 ‘산들바람 불어와’였다. 일명 ‘편지의 2중창’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곡은 오페라 사상 소프라노 두 명이 부르는 2중창 가운데 단연 최고로 꼽히는 걸작이다. 선율이나 화성은 모차르트 만년의 온갖 수법이 총동원돼 티끌만큼의 수정도 가할 수 없이 완벽하다.
이 노래가 나올 때 40년을 복역한 레드의 독백이 함께 들려온다.
“나는 이날 두 이탈리아 여자들이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말하지 않고 놔두는 것이 최선인 경우도 있다. 그건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그 목소리는 이런 온통 회색으로 뒤덮인 곳에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이 더 높고 더 먼 곳까지 솟구쳐 올랐다. 아름다운 새가 우리의 삭막한 감방으로 들어와 날개를 퍼덕이며 벽들을 부숴버리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순간 쇼생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레드의 담담한 음성이 나올 때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도 눈시울을 붉히며 공감했을 터이다. 다음 장면에서 앤디는 음악은 이렇게 돌로 만들어진 세상만 있지 않다는 것을 일깨우고 마음속의 것들은 아무도 손댈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모차르트의 무엇이 이토록 앤디에게 감동을 주었을까?
‘피가로의 결혼’은 모차르트 자신의 이야기다. 1781년 6월 8일 음악가로는 최초로 자신을 고용한 지배계급에 맞서며 잘츠부르크를 탈출했던 모차르트.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만한 권력자 콜로레도 대주교의 뜻을 거역하고 형벌까지 받으며 새장을 탈출한 모차르트는 드디어 자유를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차르트를 기다리는 것은 엄혹한 현실이었다. 몸은 자유를 얻었으되 이제 그는 빵을 위해 작곡을 해야하는 절박함에 처해야만 했다. ‘피가로의 결혼’은 여주인공 수산나가 지배계급인 백작을 이기고 자신을 뜻을 이루게 되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오페라였다.
‘궁정사회의 시민음악가’ 1호인 모차르트. 음악사상 최초로 프리랜서 작곡가로 우뚝 선 모차르트가 빈에서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은 여주인공 수산나가 지배계급인 백작을 이기고 자신을 뜻을 이루는 모차르트 자신의 이야기였다.
‘피가로의 결혼’의 무대는 17세기 중반 봉건사회의 스페인 세비야다. 따라서 계급질서는 엄격하게 지켜진다. 지배자인 백작이 피지배자인 수산나에게 초야권(初夜權)을 행사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페라는 수산나와 피가로가 저녁에 결혼을 앞둔 하루 동안에 일어나는 해프닝이다. 백작은 매너리즘에 빠진 결혼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당일 결혼을 앞둔 수산나에게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수산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재치는 백작의 술수를 보기 좋게 제압하고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다.
‘피가로의 결혼’은 빈에서 1786년 빈에서 8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강제종료였다. 초연 후 몇 회는 배를 잡고 웃어야 하는 표면적인 스토리에 떄문에 아둔한 빈의 귀족과 청중은 열광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이면에 숨겨진 계급타파와 사회모순을 비웃는 혁명적인 모습을 발견하면서 상연 금지는 당연한 것이었다.
모차르트가 꿈꾸었던 평등한 사회를 기득권층이 용인할 리 없었다. 그리고 ‘피가로의 결혼’은 당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던 프라하로 건너가 ‘대박’을 쳤다. 식민지 백성들이 이보다 더 유쾌, 통쾌, 상쾌한 공연을 접하기는 어려웠을 터.
여기에 1600년 오페라의 태동 이후 200년 가까이 이어오던 ‘레치타티보 세코’(단순하게 쳄발로 등으로 반주하는 대사 부분)가 오케스트라 반주를 동반하는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로 대체되면서 아리아와 맞먹는 수준으로 격상된다. 음악적으로 베르디와 바그너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가히 오페라는 ‘피가로의 결혼’ 전과 후로 나뉠 만큼 파격적인 변신을 이루게 되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앤디처럼 새장을 탈출해 자유로운 곳으로 날아오르려 했던 모차르트가 구체적으로 구현한 세상의 표본은 바로 ‘피가로의 결혼’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남자가 아닌 여자였고, 백작부인이 아니라 하녀 수산나이어야만 했다. 수산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징징대는 하소연 한 번 없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절묘하게 극복해간다. 그녀는 수동적인 당대 사회의 여인상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신을 컨트롤하며 무려 11명에 달하는 주요 배역 가운데 최상위에서 극을 이끌어간다.
“나리, 왜 놀라십니까? 칼을 빼 들고 불쌍한 하인을 죽이시렵니까?” 2막에서 백작부인은 외간 남자 케루비노와 노닥거리다 백작에게 들켜 급히 옷장으로 숨긴다. 이에 수산나가 케루비노를 도망치게 하고 대신 옷장에 있다가 들이닥친 백작 앞에서 비꼬듯 말할 때 관객들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여기에 한술 더 떠 3막에서는 백작부인과 아예 동지가 되어 백작을 유인할 묘책을 함께 강구한다. 바로 ‘쇼생크 탈출’에 나왔던 ‘편지의 이중창’이다. 이쯤 되면 수산나는 무식한 하녀가 아니라 백작부인을 뛰어넘는 품위와 교양을 갖춘 주류로 격상된다.
여성들이여! 모차르트가 창조한 신(新)여성 수산나를 닮고 싶지는 않은가. 21세기를 달리고 있는 지금도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불합리는 곳곳에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백작부인처럼 마냥 슬퍼하고 신세한탄을 할 것이 아니라 수산나처럼 당당하게 사회모순에 맞서 백작으로 대표되는 부조리를 이겨내야 한다. 이건 모차르트가 1786년에 갈구했던 이상적인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제3막 中 ‘편지의 2중창’
감상1: 힐데 귀덴(수산나)/ 리자 델라 카자(백작부인)/ 에리히 클라이버(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59년 녹음
감상2: 샐리 매튜스(백작부인)/ 리디아 토이처(수산나)/로빈 티치아니(지휘)/계몽시대 오케스트라
마이클 그란디지(연출)/ 글라인드본 합창단/ 2012년 8월 글라인드본 페스티벌 실황
감상3: 도로테아 뢰슈만(백작부인)/ 안나 네트렙코(수산나)/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지휘) /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클라우스 구스(연출)/ 2006년 8월 잘츠부르크 축제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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