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월간객석 2015년 4월호] Hot place 기사 : 대전의 문화예술공간 클라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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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문화예술 공간, 클라라하우스
안숙선 명창의 '우리소리 콘서트'에서 생긴 일
'얼~쑤 좋다!" 무대와 맞닿은 객석 곳곳에서 추임새가 터져나온다. 홍이 난 몇몇 관객은 의자 위에 올라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춘다. 기침을 하느라 입을 막고 작은 움직임 조차 눈치를 봐야했던 엄숙한 객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신명나는 판소리를 열창하는 명창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함께 호흡한 관객, 한껏 뜨거워진 공연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3월6일 저녁 7시30분. 대전 클라라하우스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교수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을 겸임하는 안숙선 명창의 미니 콘서트가 열렸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병창 예능 보유자인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해가 질 무렵부터 공연장을 찾은 관객이 부지런히 객석을 채웠다. 이날 공연은 판소리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대목'과 '황봉사 벌 받는 대목' '춘향가'중 '사랑가''수궁가'중 '토끼 배 가르는 대목'이 진행되었다.
"여러분, 공연 중에 가만히 계시면 안 돼요. 자 따라 해보세요. 얼쑤 좋다!"
투박한 멘트로 관객에게 추임새 넣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회자 유혁준 칼럼니스트, 능숙한 그의 진행에 공연을 기다리던 객석의 서먹한 공기는 금세 웃음이 번졌다. 한결 따스해진 분위기에서 금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안숙선 명창이 등장했다. 온화한 미소를 품은 모습이 한 송이 물망초처럼 단아하고 우아했다. 그녀은 아홉 살부터 창을 시작했지만 서른 즈음이 되고나서야 진정한 소리내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기교가 아니라 인생을 노래해야 한다'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삶을 통과해 얻은 깊은 여유가 묻어났다.
판소리는 여덟 시간을 완창하며 소리뿐 아니라 아니리와 발림 같은 연기를 혼자 선보야야 하는 독자적 예술이다. 그 외롭고 어려운 예술을 노련함으로 소화해내는 그녀였다. 그녀의 목소리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캐릭터에는 고유한 개성과 한의 정서가 녹아 있다. 그런데 안 명창의 노련미에 몰입하던 관객들이 그만 공연의 맥을 끊는 해프닝이 발생하고 말았다. 심청가 중 심 봉사가 눈뜨는 대목에서 관객의 박수가 터지는 바람에 곡의 흐림이 끊기는 난감한 상황이 연출된 것. "눈뜨기가 참 어려운데,, 결국 떴네요" 아랑곳하지 않고 능청을 떨며 다시 곡을 이어가는 그녀의 얼굴에서 오랜 연륜이 묻어났다.
판소리 '흥보가'에 등장하는 가야금 병창은 중앙대 대학원에서 수학 중인 제자 김미성과 함께해 구성진 하모니를 선보였다. 가장 큰 호응을 불러 일으킨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순서로 진행된 판소리 '춘향가'중 '쑥대머리' 따라 부르기였다. 안숙선 명창은 관객을 향해 전체 스토리를 간략히 소개하며 소리 내는 방법부터 대사까지 친절히 짚어 주었고, 관객은 힘 있게 창을 따라 불렀다.
"큰 무대 위 멀리서 바라보던 에술가와 함께 소통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친밀한 공간에서 서로 눈빛을 주고 받을 수 있잖아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예술을 통해 '우리'를 이룬다는 것이 클라라 하우스의 큰 매력인 것 같아요."
화사한 웃음꽃을 피우는 회원 김윤화 씨의 소감에서 클라라 하우스 콘서트의 정체성이 드러낫다. 따뜻한 소통이 깃든 공연의 숨결이 전해졌다.
이곳이 궁금하다.
19세기 예술 커뮤너티의 '문화살롱'을 재현한 클라라하우스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클라라하우스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예술 활동에 목말라하던 시민과 지역 예술인을 위해 19세기 예술 커뮤너티의 장점을 살린 현대판 '문화 살롱'을 시도했다. 따뜻한 엘로 톤 조명 아래 은은히 배어나는 커피 향, 50석 규모의 아늑한 소파로 배치한 좌석과 곳곳에 걸린 연주자.음악회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클라라 하우스에서는 매주 공연.강의.음악 감상이 균형있게 진행된다.
라디오 PD 출신 음악 칼럼니스트 유혁준이 진행하는 '유혁준의 음악이야기' 정기강좌에는 100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그의 강의는 마치 보이는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편안하다.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팝.재즈.가요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고 음악과 관련한 영화 이야기와 인문학 강의를 곁들여 예술의 다각적 수용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의 2악장을 들려주고, 이 선율을 노래하는 루이스 터커의 'Midnight blue'를 1985년 당시의 LP음반을 틀어준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장면을 감상하고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LP음반을 듣는다. 아델의 'Someone Like You'의 가사를 해석하고 로열앨버트홀에서의 라이브 실황을 보기도 하고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1991년 오리지널LP음반을 첫 선곡으로, 케빈 컨의 'Through the Arbor'을 마지막 곡으로 선곡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자연스럽게 음악이 흘러가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음악과 예술에 대한 관심 있어 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다양한 비교감상은 클래식 음악이 어렵고 난해 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인식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살롱은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할 수 있는 최적의 교육 장소입니다. 실연 같은 음악을 듣고 보는 것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데 훌륭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지요. 그래서 일반인도 언제든 살롱에서 거부감 없이 클래식 음악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클라라하우스 유선경 실장이 전하는 '살롱' 철학이다. 오전 12시부터 저녁 10시30분 까지 원하는 시간에 LP.CD.DVD.블루레이로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는 클라라하우스는 실연에 가까운 구현이 가능한 음향.영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1940년대에 녹음된 모노.스테레오 LP음반 그리고 최신 블루레이 디스크까지 모든 종류의 음악재생이 가능한 모노카트리지와 스테레오 카트리지를 분리해 두 대의 턴테이블을 구동하고 있다.
3월6일 안숙선 명창의 공연을 시작으로 2015년 클라라 하우스 공연 일정은 5월6일 피아니스트 니나 코건의 내한 공연, 9월 1일 피아니스트 김태형의 슈베르트 콘서트, 12월14일 노부스 콰르텟 초청 송년 음악회가 예정되어 있다. 연주자의 숨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며, 긴밀하게 교감하는 하우스 콘서트는 대규모 공연장에서 누릴 수 없는 정다움이 스며 있다. 공연 예술을 통해 지역 커뮤너티를 활성화하는 문화예술공간 클라라하우스, 강의.음악 감상.공연이 어우러진 그 곳에서 통섭의 예술이 꽃피고 있다.
글 김유리 인턴기자(editor2@gaeks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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