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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공지

[음악자료실] (1월 10일) 빈필, 베네치아 라 페니체극장 신년음악회 특집

클라라하우스
2016-01-09 03:24 15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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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오후 3시

해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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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첫 시네오페라는

빈필 신년음악회와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신년음악회로 꾸며집니다.

바로 10일 전에 공연한 생생한 실황을 하이라이트만 편집해서 보여드립니다.

 

빈필 신년음악회의 명암에 대해,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설명하고

빈필 신년음악회와 쌍벽을 이루는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의 신년음악회를 함꼐 상영합니다.

1792년에 지어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오페라하우스 가운데 하나인

라 페니체 극장!

 

빈필 신년음악회와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엄청난 양의 꽃장식이 첫 눈에 우리를 반하게 할 것입니다.

왈츠와 폴카, 갈롭으로 꾸며지는 빈필 신년음악회와는 다르게

베르디, 로시니, 푸치니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들의

주옥같은 아리아와 합창음악으로 맞불을 놓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국민의 영혼의 애국가인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가운데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왈츠와 대비되게 앙코르로 선사합니다.

 

세계 최고의 두 극장의 신년음악회.

더 좋아진 클라라하우스의 음향 및 영상 시스템으로

최고의 감동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래 두 신년음악회 사진과 극장 모습

그리고 공연 프로그램을 붙이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가 월간객석 1월호에 기고한

'신년음악회 비교' 원고를 참고하시면 감상 전에 더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올해도

클라라하우스 시네오페라는

최고의 공연을 엄선해 여러분들께 전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빈필 신년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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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페니체 극장 신년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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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객석 2016년 1월호 신년음악회 관련 기사>

 

신년음악회 특집 & 음반

글: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1814년 나폴레옹 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의 뒷수습을 위해 열렸던 빈 회의는 유럽 90개의 국가와 53개 공국(公國)이 참여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회의였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과 프랑스 5개국을 제외하면 나머지 중소국가들은 들러리나 다름없었다. 주최국인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는 회의 도중 결과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 무도회를 열었다. 이로 인해 주객이 전도돼 회의보다 놀이가 메인이 되기에 이르렀다. 하룻밤 행사에 최대 우리 돈 5억 원에 이르는 예산을 쏟아 부어 국가 재정이 파탄 직전까지 갔지만 각 국 대표들은 질펀한 놀이판에서 헤어날 줄 몰랐다. 그래서 당초 4주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던 회의는 1814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9개월이나 이어졌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무려 40일 동안 파티를 열었을 정도다.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나아가지 않는다. (Le Congrès ne marche pas, il danse)” 벨기에의 리뉴 공이 말한 것처럼 무도회는 당연히 술, 음식과 함께 춤이 수반되었다. 미뉴에트와 같은 단조로운 춤은 여기에 어울리지 않았다. 이제 막 빈에 상륙한 왈츠는 춤판에 안성맞춤이었다. 남녀가 밀착한 상태에서 빙글빙글 도는 원무(圓舞)가 기본이었던 왈츠는 외교사절과 귀부인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리뉴 공 자신도 무도회장에서 만난 부인과 밀회를 즐기다 얻은 감기로 인한 합병증으로 죽음을 맞았다. 빈 회의가 끝나고 왈츠는 유럽 전역으로 자연스럽게 퍼져나갔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키웠던 왈츠를 위해 다양한 음악이 필요했고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기꺼이 팔을 걷어붙이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했다. 베토벤이 쓰레기통에나 들어가야 할 음악이라며 비난했던 왈츠는 그러나 놀이용 음악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정치적인 행보는 양심 있는 음악가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는 1848년 오스트리아의 압제에 대항해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방의 독립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라데츠키 장군의 개선 행사용으로 작곡했던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다. 그러나 왈츠는 대세로 굳어졌다.

 

 

베토벤이 그렇게도 혐오했던 왈츠는 이렇게 춤곡의 주류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리고 19391231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빈 주둔 나치 군인들을 위해 송년음악회를 열어주었다. 소위 군인아저씨걸그룹을 선호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당시 점령군 또한 베토벤의 교향곡처럼 심각하고 긴 음악은 좋아하지 않을 터였다. 당연히 길이가 짧고 흥겨운 왈츠와 폴카가 선곡되었다. 독일군들은 환호했고 1941년에는 아예 11일 새해 오전 11시로 옮겨 신년음악회로 자리 잡았다. 저녁시간에 빈 국립오페라에서 오페라 반주를 해야 했던 빈필이 낮 시간에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열었던 초창기 전통이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태동한 왈츠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생긴 빈필 신년음악회에 연주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빈필 당국은 2차 대전 당시 단원 절반이 나치당에 가입하고 8명의 유태인 단원을 강제수용소로 보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묵과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신년음악회는 클레멘스 크라우스를 거쳐 빌리 보스콥스키, 로린 마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를로스 클라이버, 주빈 메타, 리카르도 무티 등 내로라하는 거장들이 지휘했다. 그리고 신년음악회=빈필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성립되었다. 전 세계 1억이 넘는 시청자가 TV로 지켜보고 당일 공연 티켓은 200만원에서 800만원이 넘는 암표가 매년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빈필 신년음악회는 일반인에게 최고의 새해 음악 이벤트다. 음반 또한 2주만 지나면 출시된다. 보스콥스키부터 작년 바렌보임에 이르기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LP. CD, DVD로 나왔다. 그 가운데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은 단연코 클라이버가 지휘한 1989년과 1992년 신년음악회다. 자신이 원하는 악단만 골라 지휘할 수 있는 극소수 지휘자 가운데 한 명인 클라이버가 두 차례나 빈필 포디움에 섰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클라이버는 음악성보다는 오락적인 면이 도드라지는 왈츠를 예술적인 경지에까지 끌어올렸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같이 쏘는그의 현란한 지휘는 누구라도 단번에 빨려 들어가는 마력을 품고 있다. 1987년 단 한번 지휘한 카라얀과 클라이버가 지휘한 천둥과 번개폴카를 비교해 들어보라. 클라이버의 위대함을 이 단순한 폴카에서 그대로 감지할 수 있다.

 

 

카라얀은 신년음악회 최초로 성악가를 무대에 세웠다. 자신이 총애하던 캐슬린 배틀에게 봄의 소리왈츠를 부르게 한 것. 이에 질 새라 2012년 얀손스는 아예 빈 소년합창단을 합창석에 세워 합창과 함께하는 곡들로 청중의 갈채를 받았다. 2006년 신년음악회에서 얀손스는 왈츠에 빠져 러시아로 왈츠를 도입한 알렉산드르 1세를 떠올리게 하는 크라펜 숲폴카를 연주했다. 이 곡은 1869년 슈트라우스 2세가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블로프스크 궁전에서 연주하기 위해 작곡했다. 그래서 원래 제목도 파블로프스크 숲에서였다. 2005년에는 인도양 쓰나미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탈리아인의 피로 만들어진 영원한 앙코르 라데츠키 행진곡을 생략하기도 했다. 바그너와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았던 2013년은 베르디와 바그너의 작품을 프로그램에 넣어 레퍼토리의 다양성을 꾀하기도 했다.

 

 

사실 신년음악회는 유럽 대부분의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다. 그 가운데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의 신년음악회는 이제 빈필 신년음악회와 쌍벽을 이루는 이벤트로 성장했다. 오스트리아에 왈츠가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오페라가 있다. 1836년에 이어 160년 만인 1996년 다시 화재로 전소된 극장을 완벽하게 복원해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신년음악회의 닻을 올렸다. 당연히 오페라 갈라콘서트로 진행되고 앙코르는 당연히 라데츠키 행진곡의 대척점에 있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끝난다. 2012년 디에고 마테우즈가 지휘한 신년음악회의 영상물은 세계 오페라하우스 가운데 가장 화려하기로 유명한 라 페니체 극장의 유려함과 성악가, 합창단의 놀라운 연주가 전편을 수놓는다.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은 2006년 마린스키 콘서트홀을 오픈하고 이듬해부터 신년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이 주가 된다. 2007년 콘서트 실황을 보면 게르기예프가 특유의 이쑤시개모양의 지휘봉을 들고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서곡을 격하게 지휘하는 시작 부분부터 흥미를 자아낸다. 기막힌 어쿠스틱을 들려주는 마린스키 콘서트홀의 압도적인 울림 또한 오디오의 볼륨을 자꾸 올리게 한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한 베르디의 운명의 힘서곡은 역시 비켜갈 수 없다.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모음곡으로 마무리되는, 극히 러시아적인 신년음악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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