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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자료실] 빈 신년음악회와 라데츠키 행진곡

클라라하우스
2017-01-13 01:11 16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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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객석 20142월호

The Last Scene - 라데츠키 행진곡

 

 

1848, 지나친 언론검열로 경찰국가라는 오명을 쓰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공포정치를 주도한 장본인이었던 메테르니히가 드디어 실각했다. 이를 계기로 압제에 시달리던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롬바르디아 지방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해방을 부르짖는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베르디 또한 파리에서 밀라노로 급거 귀국했다. 하지만 적국의 군대를 완전히 몰아낸 기간은 단 5일에 불과했다. ‘밀라노의 5은 향후 국가통일(Risorgamento)'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대가는 참혹했다. 라데츠키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제국군은 잔인한 보복을 자행하며 롬바르디아 평원을 피로 물들였다. 1848831일 라데츠키와 휘하 병사들은 빈으로 개선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현재 시립공원으로 변한 빈 성벽 앞에서 거창하게 열린 환영행사를 위해 행진곡을 작곡해 바쳤다. 제목은 라데츠키 행진곡’,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그는 평론가들에게 정치적인 음악가라는 비난을 들으며 결국 런던으로 피신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민중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것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도 높았기 때문이다.

 

 

11일 오전 11시면 전 세계 수십 개 국가에서 생방송으로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를 시청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슈트라우스 일가의 왈츠와 폴카가 주 메뉴인 이벤트는 빈이 내세우는 가장 대중적인 음악상품이다. 그 마지막에 라데츠키 행진곡이 연주된다. 청중은 초연할 때 군인들이 박수친 것을 그대로 따라 한다. 이탈리아에서 볼 때 라데츠키는 우리에게 일제의 이토 히로부미와도 같은 철천지원수다. ‘라데츠키 행진곡은 당연시 금기시된다. 식민지였던 이탈리아 입장에서 보면 자국민의 피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베토벤은 왈츠와 같은 싸구려 음악은 쓰레기통에나 들어가야 한다며 분노했다. 빈에서도 뜻 있는 음악가들은 기회주의적인 슈트라우스 일가를 싫어했다.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KBS 교향악단의 신년음악회의 마지막 곡 또한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다. 박수치며 흥겨워하는 객석을 보며 필자는 이탈리아와 일본을 동시에 떠올렸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의 신년음악회처럼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더 어울리지는 않았을까. 어설프게 빈을 따라하느니 우리만의 신년음악회 프로그램은 기획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예술은 정의롭고 양심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글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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