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한밭춘추 5] 마술피리는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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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8월 1일자
[한밭춘추] '마술피리'는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274187
'마술피리'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꼭 70일 전에 초연된 오페라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모차르트가 꿈꾸던 차별 없는 평등사회가 올 것만 같은 예감이 유럽 사회를 뒤덮고 있던 시기. 하지만 '궁정 사회의 시민 음악가'로 첫 발을 내디딘 모차르트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먹고살기 위해 천재(天才)는 낭비되고 건강은 극도로 나빠졌다. '마술피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백조의 노래'가 되었던 '레퀴엠'(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과 함께 작곡한 모차르트 최후의 걸작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밤의 여왕'은 빛의 세계의 현자 자라스트로에게 딸 파미나를 납치당했다. 2막에서 파미나는 어머니가 악의 화신이라는 것을 자라스트로에게 듣고 자신을 구하러 온 타미노 왕자와 함께 시련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룬다. 밤의 여왕은 복수심으로 태양의 제국을 무너뜨리려 하지만 결국 어둠의 세계는 멸망한다.
얼핏 보면 권선징악적인, 선이 악을 이기는 극히 싱거운 스토리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와 흑백논리는 복잡한 세상을 판단하는데 대단히 위험하다. 이 시대 최고의 모차르트 해석가인 거장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절대악'과 '절대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움과 질투로 끝난 밤의 여왕과 자라스트로의 연애사건으로 인해 파미나가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자라스트로의 여성에 대한 경멸도 이로 인해 생겼다고 보았다. "너의 어머니는 오만불손한 여인이다. 그래서 내가 네 어미의 품으로부터 너를 떼어놓았다"라며 자신의 납치를 정당화한다. "이해하려 하지 말라. 여인네들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당신과 딸이 남자들의 지혜로 인해 올바로 이끌림 받는 것이 바로 당신에게 남겨진 임무다." 유명한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부르기 직전 밤의 여왕의 남편이 뱉어내는 이 대사는 여성 차별의 극을 달린다.
'마술피리'는 모차르트 당대 사회의 모든 천태만상이 녹아 있는 용광로 같은 오페라다. 음악적으로도 모든 창법이 등장인물에 따라 다르게 구사되는 완벽한 작품이다. '질풍노도 운동', '프리메이슨' 사상뿐 아니라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까지 꿰뚫고 있어야 비로소 이해되는 어마어마한 대 서사시다. 그저 동화 같은 내용만 부각하여 여름방학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로 한정 짓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어른들의 상술이다. 모차르트의 한숨과 눈물, 시대정신이 숨 쉬고 있음을 어른들이 먼저 깨우쳐야 한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클라라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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