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한밭춘추 4] 모차르트를 따라한 혁명가 베토벤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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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7월 25일자
[한밭춘추] 모차르트를 따라한 혁명가 베토벤의 '영웅'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273284
"나는 예술을 오직 가난하고 고통 받는 자들만을 위해서 창조할 작정이오."
베토벤은 철저히 '인간'이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언제나 비상(飛上)하기를 원했다. 세상에 군림하는 어느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인간애'의 구현을 위해 앨버트로소처럼 날아올랐던 것이다. 그건 14년 먼저 태어났던 모차르트가 일찍이 품었던 이상과 완벽하게 같았다. 1787년 17세의 베토벤은 고향 본에서 꿈에도 그리던 모차르트를 만났다. 음악적인 기술 전수 외에도 선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베토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중심은 당연히 '양심'과 '정의'였을 터였다.
교향곡을 배제하고 어찌 악성(樂聖) 베토벤을 일컬을 수 있으랴. 그가 쌓아올린 9개의 교향곡은 인류 불멸의 문화유산으로 영원히 남을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모차르트를 잇는 적자로 베토벤은 전무후무한 위대한 교향곡을 남겼고 그 본격적인 출발점은 바로 3번 '영웅'에서 비롯되었다.
소수의 귀족이 대다수의 민중을 착취하는 시대, 베토벤에게 프랑스 혁명은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더구나 혁명 이후 절대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세상을 실현하려고 했던 코르시카 섬 출신의 이방인 나폴레옹은 모차르트만큼이나 베토벤을 열광시킨 장본인이었다. 당시 자유와 민주주의, 인간 해방을 실제로 이끄는 영웅은 분명 나폴레옹이었다.
1804년 봄 베토벤은 교향곡 3번을 완성하고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기 위해 표지에 '보나파르테'를 직접 쓰고 사본을 파리로 보내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5월 18일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격노했고,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표지의 나폴레옹 이름을 북북 지우고 이탈리아 말로 '신포니아 에로이카' 즉 '영웅 교향곡'으로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1994년에 개봉했던 영화 '불멸의 연인' 전반부, 베토벤이 사랑하는 귀차르디의 손을 잡고 길을 가다가 한 무리의 귀족을 만난다. 이때 배경으로 흐르는 '영웅 교향곡' 1악장 도입부는 압권이었다. "그들이 우리를 위해 비켜야 해. 이제 귀족들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내가 어렸을 때는 이런 말만 해도 체포되었지. 하지만 지금은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겁먹고 있지. 사람들은 모두 나폴레옹을 두려워하고 있어. 내 교향곡의 주제가 바로 나폴레옹이라고." 베토벤이 연인에게 하는 이 말은 '영웅 교향곡'의 정수이자 모차르트와 함께 평등사회를 꿈꿨던 원대한 꿈이 그대로 드러나는 명언이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클라라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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