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사] [한밭춘추 7] 나라를 사랑했던 작곡가 베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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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8월 15일자
[한밭춘추] 나라를 사랑했던 작곡가 베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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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아, 금빛 날개를 타고 날아가라! 부드럽고 따뜻한 그곳. 달콤한 향기로 가득한 우리 조국의 비탈과 언덕으로 가서 머물러라. 요단강의 강둑과 시온의 무너진 탑들에 안부를 전하라. 잃어버린 사랑하는 조국이여!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3부 시작과 함께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빼앗긴 조국을 그리워하는 합창이다. 1842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한 이래 이탈리아 국민에게 '제2의 애국가'가 되어버린 바로 그 노래다.
1848년 파리에서 시작된 2월 혁명은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드레스덴에서는 바그너가 직접 가담했고 정신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슈만조차도 '4개의 행진곡'을 작곡해 음악으로 힘을 보탰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서는 3월 23일 밀라노를 중심으로 독립전쟁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1815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국가부흥운동'(Risorgimento)은 절정에 달했다.
당시 마멜리가 작곡한 애국가와 함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독립운동가로 어디서나 불려졌다. 베르디는 4월 5일 파리에서 밀라노로 급거 귀국해 독립군의 사기를 높였다. '산 마르코 공화국'으로 이름을 바꾼 베네치아 혁명군 소속으로 전투를 하고 있던 자신의 대본작가 피아베에게 편지를 써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1차 독립전쟁은 7월 25일 쿠스토차 전투에서 라데츠키 장군이 이끄는 오스트리아 제국 군대에 패해 막을 내렸다. 8월 31일 빈으로 돌아온 라데츠키 휘하의 군대는 빈 성벽 앞에서 요한 쉬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 연주를 들으며 승리를 만끽했다.
베르디는 땅을 치며 통탄했다. 결국 1871년 이탈리아는 통일되었고 샤르데나의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초대 국왕 자리에 올랐다. 독립운동 기간에 이탈리아 국민들은 '비바 베르디'를 외쳤다. '이탈리아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만세'(Viva Vittorio Emanuele Re D'Italia)를 베르디를 이용해 합법적으로 부른 것이다. 물론 베르디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영원한 앙코르 '라데츠키 행진곡'는 금기시된다. 마치 우리 광복절에 일본 국가가 연주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당연히 우리에게는 다분히 정치적인 '라데츠키 행진곡'보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정서적으로 더 어울린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 음악살롱 클라라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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