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감상회 일정] 제22회 LP감상회 - 슈베르트와 페라스의 바흐 무반주
본문
<제22회 클라라하우스 LP감상회>
* 일시: 2월 23일(토) 오후 3시
* 해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 예약문의: 042-861-5999
지난해 12월 22일 이후 두 달 만에 열리는 클라라하우스 LP감상회.
전국에서 오로지 아날로그 LP를 듣기 위해 오시는 애호가분들께 1월의 어쩔 수 없는 ‘쉼’에 대해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합니다.
22회 LP감상회의 화두는 슈베르트와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트앙 페라스입니다.
어쩌면 두 사람은 굴곡 많았던 인생역정이 닮은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은 노래로, 한 사람은 바이올린으로 비참하게 스러진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겨울의 정점인 1월에 준비했었지만 2월로 넘어가 겨울의 끝자락에 ‘겨울을 여행(겨울나그네 원래 제목의 의미)’합니다.
슈베르트의 예술가곡 가운데, 특히 연작시를 묶은 연가곡집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
색깔은 온통 잿빛.
매독에 의한 합병증으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세상을 등졌던 슈베르트. 육신의 아픔과 가난, 소외 등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엄습하는...
“나의 고통 속에서 우러나온 작품은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라고 고백했던 슈베르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보리수, 안녕, 우편마차, 봄꿈’, 얼핏 떠올려지는 곡들입니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의 ‘겨울나그네’는 고전이자 교과서입니다.
슈베르트에 들어가는 입문서와도 같습니다.
1962년 발매된 초반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한스 호터.
존경하는 안동림 선생님이 “자칫 기교에만 흐르기 쉬운 리트 가수들 중에는 특이한 존재이며 어딘가 동양적인 고담(枯淡)의 경지를 느끼게 해준다.” 라고 극찬했던 호터.
그가 남긴 3회의 겨울나그네 녹음 가운데 정점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 1961년 녹음한 DG초반으로 감상합니다.
고귀함과 도도함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스 호터의 슈베르트는 이미 세상의 것이 아닐 듯 합니다.
여기에 위대한 반주 피아니스트 제랄드 무어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터입니다.
그리고 바흐 무반주! 그리고 파르티타 3번 5악장 ‘샤콘느’
단 8마디의 주제가 요람에서 시작해,
무려 30회를 변주하면서 돌고 돌아 인생의 종착역에 이르는 과정이,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너무도 닮아 있는,
파르티타 3번의 ‘샤콘느’는 바흐의 인생역정이자 우주의 근원과도 같습니다.
독재자처럼 자신의 음악만을 강조하는 카라얀과의 협업이 너무도 힘들었던 페라스.
하지만 혼자 하는 무반주야말로 페라스의 음악을 가장 페라스답게 표현할 수 있었던 무기와도 같았을 겁니다.
찰지고 꽉 찬 음색은 어쩌면 요한나 마르치조차도 범접하지 못하는 세계입니다.
마리아 칼라스가 피를 토하듯 절규하는 도니제티 ‘안나 볼레나’의 광란의 장면,
덴마크 출신의 첼리스트 에를링 브론달 벵테숀이 연주하는 비발디는 청량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방의경이 드디어 클라라하우스에 첫 선을 보입니다.
1972년 1집 음반이 유신정권에 의해 판매금지 되면서 현재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초반은 1000만원을 주고도 구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음반이
2016년 한정발매로 복각되었습니다.
‘아름다운 것들’ 원래 방의경이 붙인 가사를 김민기가 양희은에게 주었다지요.
방의경의 원곡을 LP로 감상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화끈한 싱글초반,
돈 맥클린의 ‘빈센트’는 영화 ‘러빙 빈센트’의 엔딩씬을 함께 감상합니다.
CCR의 7인치 싱글 또한 어깨를 들썩이게 합니다.
2월 23일 LP감상회.
위대한 거장들이 쏟아내는 음악의 향연에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발걸음을 기다립니다.
아래 제가 1997년에 쓴 슈베르트에 대한 일기장을 붙입니다.
그때의 감성으로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음악칼럼니스트 유혁준 올림
* 선곡표 *
<클래식>
1. 슈베르트 연가곡집 ‘겨울나그네’ D.911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바리톤/ 제랄드 무어, 피아노/ 1962년 녹음 초반)
2. 슈베르트 연가곡집 ‘겨울나그네’ D.911
(한스 호터, 바리톤/ 에릭 베르바, 피아노/ 1961년 12월 15일 녹음 초반)
3. J. S. 바흐
-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 BWV.1001 中 ‘아다지오’
-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1번 BWV.1002 中 ‘사라방드’
-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BWV.1004 中 ‘사라방드’
-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BWV.1004 中 ‘샤콘느’
(크리스티앙 페라스 1933~1982, 바이올린/ 1978년 발매 초반)
4. 도니제티 '안나 볼레나' 2막 '울고 있나요? - 그리운 고향의 성으로 데려다 주오 Piangete Voi? - Al Dolce Guidami Castel Natio'
(마리아 칼라스, 소프라노/ 1959년 콜롬비아 모노 초반)
5. 비발디 ‘첼로 협주곡’ E단조 中 Largo-Allegro
(에를링 브론달 벵테숀 Erling Blöndal Bengtsson 1932~2013/ 프로무지카 챔버 오케스트라/ 1960년대 덴마크 초반)
<가요>
1. 방의경 ‘아름다운 것들’
(1949년 생/ 이화여대 미대/ 1972년 발매/ 금지곡으로 음반 소각/ 미국 이주/ 67세 2016년 300장 LP 한정 발매/ 2016년 6월 11일 이화여대 김영의홀 콘서트)
<팝>
1. 엘비스 프레슬리(1915~1959) ‘There's Always Me’
(7인치 싱글 LP 초반)
2. 돈 맥클린 Don McLean ‘Vincent’
(1972년 초반)
3. 영화 ‘러빙 빈센트’ 엔딩 씬 감상
4. (CCR)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1967~1972) 'Have You Ever Seen The Rain?'
(2009년 데뷔 40주년 기념 7인치 싱글LP)
1997년 1월 31일에 쓴 일기 중에서
슈베르트 「우편마차」「물방앗간과 시냇물」
‘당신의 밤과 음악’을 들었다. 연초부터 슈베르트 탄생 200주년 특집 프로그램들로 KBS 제1 FM은 슈베르트의 삶과 그 인생 역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었다. 그렇게도 베토벤을 흠모했음에도 생전 한 번도 베토벤에게 말 한 번 붙이지 못했던 지극히 소심했던 슈베르트, 마지막 교향곡인 제9번 「Great」를 쓰고는 스스로도 자신감에 넘친 역작으로 들떠 곧바로 빈 악우협회로 달려가서 출판, 연주를 의뢰했지만 당시로는 '천국적으로' 길뿐만 아니라 스케일이 너무도 크고 방대해서 조소와 냉대, 비웃음만을 받았지만 반발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뒤돌아서야 했던 슈베르트.
결국 이 C장조 교향곡은 슈베르트 사후 10년이 지나서 슈만의 기적적인 발견으로 세상에 소개되어 멘델스존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슈베르트의 생전에 공개 연주된 작품은 10%도 채 안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토록 마음이 여리었으며 친한 친구들 몇 명과 어울려 그의 슬프디 슬픈 가곡들을 연주하기를 좋아했다. 지극히 투쟁적이고 자유주의자인 베토벤이 귀족들 위에 군림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의 음악 앞에 무릎 꿇게 했던 것과는 너무도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FM을 통해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중 「Gute Nacht」, 「보리수」, 「얼어붙은 눈물」 등이 헤르만 프라이의 목소리로 나오고 있다. 왜 그는 이다지도 슬픈 가사들과 선율을 써야만 했을까? 혹자는 그의 음악을 자주 접하면 어두움과 절망에 빠져 허무주의로 발전해 간다고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서양음악사적으로 볼 때에도 바로크 이후의 고전파, 낭만파의 음악들은 인본주의, 계몽주의에 입각해 이미 신격은 인격 아래에서 성악곡보다는 기악곡이 더 활개를 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처절하도록 슬픈 슈베르트의 가곡 사이사이에서 샘물처럼 영롱한 그의 순수와 삶에의 사랑, 그리고 미래에의 동경을 나는 발견하고 싶다. 그가 갈구했던 이상의 궁극은 저 하늘나라 뒤편의 천국이었음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중 제19곡 「물방앗간과 시냇물」을 피터 피어즈의 음성으로 들어 보라. 비록 곡은 어두울지라도 그는 밝게 노래하고 있다. 피아노와의 절묘한 조화가 독일 리트의 예술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어느 누가 이러한 아름다운 멜로디를 전할 수 있겠는가?
Die Post (우편 마차)
우편 마차 소리 듣고 내 마음 왜 이리 울렁거리나
그리운 님의 소식 날마다 기다렸소
편지는 모두 허사였소
오늘일까 내일일까 기다릴 뿐
님의 편지 이다지도 안 오나
날이면 날마다 기다렸소
산 너머 님 계신 마을 내 눈에 아롱진 그대 모습
그리운 님 계신 마을 달려갈까
그리운 심정 풀고파 그대와 얘기하고파
쓰라린 내 마음 하소연하고 싶구나
쓰라린 내 마음 하소연 언제 하나…
셋잇단음표의 스타카토 반주가 우편 마차의 말발굽 소리를 나타내며 겉으론 경쾌하게 들리지만 마음 속의 님에 대한 고통이 절절히 배어 있다.
그 님이 그 정결한 여신이 오늘은 이다지도 보고 싶다. 어디엔가 있을.
슈베르트는 삶 속에서의 고통을 신을 통한 신앙으로 극복했을까?
말하리라, 단호히. 그러하다고...
슈베르트의 예술 가곡이 불리워지는 음악회에 다녀와야겠다. 그 시심(詩心)과 음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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