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감상회 일정] 제59회 LP감상회 - 클라라 하스킬의 봄
본문
<제59회 LP감상회>
* 제주클라라하우스(숨도 내 사운드오브아일랜드홀): 3월 18일(토) 7PM~9PM
* 서울 포니정홀: 3월 11일(토) 3PM~8PM
* 해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 신청곡 및 예약문의: 02-2008-8814
#러시아로망스 #박경숙 #니나코간 #3월11일 #LP감상회 #5시간 #포니정홀
2003년 1월 모스크바에는 40년 만의 추위가 엄습해 동사한 사람만 수천명이 넘었다.
나는 그때 모스크바에 있었다.
첼리스트 박경숙, 전설적 거장 레오니드 코간의 딸 니나 코간이 함께하는 음반 녹음 때문이었다.
나는 2000년 가을 피아니스트 미하일 페투호프를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홀에서 만나, 그를 통해 니나 코간을 소개받았다.
모스크바에 있는 페투호프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옆집에 니나 코간이 살고 있었던 것.
구소련 시절 국가에서 예술가들에게 주었던 아파트로 여겨졌다.
사실 레오니드 코간도, 미하일 페투호프도 우크라이나가 고향이다.
한번 친해지면 러시아 사람들은 정말 인간적이다.
나는 니나 코간의 집에도 갔고 만찬을 하면서 그녀의 동생이자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 지휘자인 파벨 코간도 만났다.
꿈만 같았다.
정치가로 치면 링컨이나 처칠을 만났다고나 할까.
나에게는 예전부터 꿈에서나 만날법한 레오니드 코간의 가족을 한자리에 만나 술잔을 기울였으니!
그 인연으로 니나 코간은 한국인 첼리스트와 함께 음반 녹음하는 것을 혼쾌히 승낙하고,
러시아의 거장들이 즐겨 녹음했던 모스크바 라디오 방송국 1스튜디오를 빌려 마침내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 멋진 일들은 우리 음반사 굿인터내셔널 이근화 대표님의 결단이 없었다면 이렇게 일사천리로 이뤄질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는 피아노 파트가 어쩌면 더 어렵다는 난곡이다.
니나 코간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피아니즘은 러시아 음악의 본질을 꿰뚫었다.
내가 ‘한강 이남에서 제일 잘 한다고^^’ 늘 추켜세웠던 첼리스트 박경숙.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 속에 3주나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러시아를 온몸으로 느끼고 연습하고 녹음했다.
러시아 로망스는 니나 코간이 직접 첼로와 피아노로 편곡했다.
모스크바 필하모닉 방송 녹음도 전담한다는 엔지니어는 거의 편집 없이 아날로그 느낌으로 음원을 담았다.
몇 달 후 드디어 음반이 출시되었다.
나는 당시 예원학교 강의 때 음악과 학생들에게 이 음반을 자주 들려주었다.
학생들 대부분이 CD를 구입했다.
가을이면 클래식 FM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풍월당 대표이자,
나를 늘 살갑게 챙겨주셨던,
박종호 선생님은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책에 무려 12페이지를 할애해 이 음반에 대해 아름다운 글로 수놓아주셨다.
최성은 실장님도 풍월당 음반진열대 잘 보이는 곳에 놔 줄 만큼 좋아해주었다.
또한 아날로그적 분위기는 ‘오디오파일’ 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오디오 시청회를 간 집에 이 CD가 있을 때 나는 슬며시 미소지었다.
그러고는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고마우니까!
그렇게 소리소문 없이 20년 동안 이 CD는 입소문으로만 5만장이 팔려나갔다.
스타마케팅이 아닌 클래식 CD로는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작년부터 이근화 대표를 졸랐다.
LP로도 제작하자고.
이근화 대표는 한술 더 떠, 아예 45회전 고음질 2LP로 만들자고 했다.
2월 말 ‘러시아 로망스’는 드디어 LP로 발매되었다.
몇 몇 지인들은 내게 LP를 듣고 있다고 연락을 보내왔다.
나는 지난주 제주클라라하우스에서,
어제는 포니정홀 월요 강좌 시간에 이 LP를 틀었다.
푸시킨의 시를 낭독하기도 하고,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를 듣기도 했다.
듣는 분들은 하나 같이 감동한다.
3월 11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서울 포니정홀,
3월 18일 토요일 저녁 7시부터는 제주클라라하우스(숨도 내 사운드오브아일랜드홀)에서,
제59회 LP감상회가 열린다.
이날 메인은 바로 ‘러시아 로망스’ LP다.
시간 되시는 분들과 함께 라흐마니노프와 러시아 로망스를 같이 나누고 싶다.
맨 아래 음반 내지에 쓴 글 가운데 푸시킨과 러시아 로망스에 대한 부분을 붙인다.
-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 제59회 LP감상회 선곡표 *
<클래식>
1.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러시아 로망스 ‘나는 당신을 만났습니다’
(박경숙 cello/ 니나 코간 piano/ 2003년 1월 모스크바 라디오 방송국 1스튜디오 녹음/ 2023년 발매 LP)
2.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18번 G장조 K.301
(아르투르 그뤼미오 violin/ 클라라 하스킬 piano/ 1959년 모노 초반)
3. 차이콥스키 (1840~1893)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
(레오니드 코간 violin 1924~1982/ 바실리 네볼신 지휘/ 구소련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1953년 텔레푼켄 모노 초반)
4. 비발디 협주곡집 Op.8-1 ‘사계 中 봄’
(인테르프레티 베네치아니/ 체이싱 더 드래곤의 첫 다이렉트 컷 레코딩!)
5. 베르디 오페라 ‘맥베스’ 1막 2장
맥베스 부인의 편지 장면: 카바티나 '야망에 넘쳐서' - 카발레타 '일어서라, 지옥의 사자들이여'
(마리아 칼라스 soprano/ 니콜라 레쉬뇨 지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58년 9월 런던 녹음 LP음반)
6. 맥베스 부인의 편지 장면: 카바티나 '야망에 넘쳐서' - 카발레타 '일어서라, 지옥의 사자들이여'
(마리아 칼라스 soprano/ 니콜라 레쉬뇨 지휘/ NDR 방송 교향악단/ 1959.5.15 함부르크 라이스할레 실황 DVD)
<영화이야기>
1. 영화 ‘빌리 엘리어트’
2. 영화 007시리즈 ‘A View to a Kill’
<팝 & 재즈: 민명원의 올드팝이야기>
1. The Saddest Thing
(멜라니 사프카 The Good Book/ 1972년 LP 초반)
2. Hello
(아델 1988.5.5 런던 토트넘/ 2016년 LP음반)
(2016.6.25. 글래스톤베리 실황 블루레이 감상)
3. Islands in the Stream
(케니 로저스 1936~2020.3.20/ 돌리 파튼 1946~/ 1983년 7인치 싱글 초반)
4. Take Five
(The Dave Brubeck Quartet 1951~1967/ 1959년 발매 음반)
<우리 가요>
1. 사랑할수록
(부활 3집/ 보컬: 故 김재기/ 1993년 LP 초반)
2. 무정블루스
(이은미/ 2022년 LP음반)
3.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웅산/ 2020년 LP음반)
2003년 음반 발매 당시,
<러시아 로망스 음반 내지 글, 부분 발췌>
나탈리아 곤차로바로 귀결되는 푸쉬킨의 여성 편력과 사랑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갈 만큼 절대적인 것이었다. 나탈리아와 단테스 남작과의 추문에 격분한 푸쉬킨은 결국 결투를 신청하게 되고 치명적인 총상을 당한 그는 자신의 서재로 돌아와 허무한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1931년 허영과 속물 근성이 다분했던 나탈리아와 결혼하기 전, 젊은 시인은 안나 올레니나라는 매력적인 여인에게 자신의 생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러시아 예술원 원장의 딸이었던 안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푸쉬킨은 ‘아네테 포치키네’ 라고 부르며 ‘영원한 사랑’에 빠졌노라고 온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몇 차례 유배를 다니며 당국과 끊임없는 갈등관계인 평민출신의 사위는 안나의 아버지에게 철저히 거부당하는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토록 염원했던 사랑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지만 푸쉬킨은 안나 올레니나에게 가슴이 저며올 만큼 처연한 사랑의 시 한 편을 바쳤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아직 존재하는 한
내 영혼 속에 완전히 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거나 방해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아무런 희망도 없이
때로는 나의 소심함이 때로는 질투가 나를 괴롭게 하였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렇게도 진심으로 그렇게도 나즈막히
언젠가 신이 당신에게 다른 사랑을 준다 해도...
떠나간 사랑에 대한 한없는 기다림을 절절한 마음으로 담아낸 간절한 연가이다. 푸쉬킨의 이 애틋한 짝사랑은 작곡가 쉐레메체프의 마음을 움직여 아름다운 로망스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이 곡은 러시아인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사랑노래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음악이 자주 연주되고 있다. 교향곡에서부터 독주곡에 이르기까지 언제부터인지 연주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러시아 음악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러시아 음악이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흔히들 러시아 음악은 우리 정서와 비슷한 한을 담고 있다고 한다. 모진 자연을 감내하며 대륙을 일구어온 그들의 인내는 음악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글린카에서 시작해서 러시아 5인조,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에 이르는 위대한 작곡가 그룹이 세계 음악계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예술가곡을 ‘로망스’ 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낭만과 애환이 내재되어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로망스의 대부분의 가사는 이루지 못한 연인의 슬픈 이별을 읊고 있다. 또한 러시아 민요는 러시아인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의 보고이다. 19세기 러시아의 유명한 극작가였던 오스트로프스키는 “러시아 민요는 러시아인의 영혼이다” 라고까지 말했다.
이러한 러시아 로망스와 민요를 가장 인간적인 악기인 첼로로 노래하면 어떨까? 피아니스트 니나 코간이 직접 편곡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로망스는 우리를 러시아로 음악여행을 떠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해줄 것이다.
러시아 음악의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그들의 ‘어머니 강’ 네바 강이 시내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유유히 흘러간다. 러시아인들의 한을 담고 흐른다는 네바강. 겨울 네바는 결빙된다. 차이코프스키가 네바강 물을 마시고 콜레라에 걸려 그토록 염원했던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던가. 필자는 2003년 1월 살을 에는 강바람을 맞으며 2000년 여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의 추억을 되새기며 데카브리스트 광장 뒤에서부터 에르미타쥬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계절은 바뀌어 겨울이 되었건만 여전히 머리 속은 푸슈킨의 시에 쉐레메체프가 곡을 붙인 로망스 ‘당신을 사랑했습니다’의 선율로 가득했다.
두터운 얼음을 뚫고 나오는 물안개를 바라보며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왜 러시아 로망스의 시가 연인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토로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혹독한 추위를 감내하고 자연에 묵묵히 순응해온 그들에게 사랑의 아픔을 이기는 지혜는 자연스럽게 터득되었으리라. 러시아 음악의 내면을 알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겨울을 찾기를 권하고 싶다. 그곳에서 어느 분이 힘주어 말해준 것이 떠올랐다.
“러시아를 이해하려고 하지말고 단지 느끼기만 하라!”
글/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경인방송FM PD
댓글목록0